장애예술인 인터뷰, 미술계 다크호스 김경숙의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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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EC 0 Comments 141 Views 24-05-13 10:02본문
장애예술인 인터뷰, 미술계 다크호스 김경숙의 도전기
첫 번째 도전
주부로 지내던 김경숙의 집 근처에 노틀담복지관이 있는데 복지관 프로그램으로 수필강좌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신청을 하였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우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실기로 수필을 써서 내면 잘 썼다는 칭찬을 들었다. 글을 잘 쓴다는 평가가 글을 더 배우고 싶다는 욕구로 솟구쳤다. 그래서 글쓰기 공부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소설가 조동선 선생을 알게 되어 바로 찾아가서 소설 공부를 시작하였다.
수필과는 달리 소설은 인물을 설정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서 완벽하게 구조를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에피소드와 대사로 새로운 세상을 창작해 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습작들이 단편소설로서 형식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김경숙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서 2015년 5·18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였는데 뜻밖에 대상을 받았다. 소설을 배운 지 1년 만에 등단을 한 것이다.
2018년 7편의 단편소설을 모아서 첫 번째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를 발간하였다. 김 작가는 ‘책이란 내게 변하지 않는 우정이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내 우정은 대화를 하듯이 내가 긴 잠을 자는 동안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마치 상대가 듣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말처럼’이라고 발간 소회를 밝혔다.
두 번째 도전
집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 외에는 접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울감이 생겼다. 중년에 찾아오는 갱년기를 그냥 방치해 두면 정신 건강에 안 좋겠기에 동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민화교실에 2023년 5월에 수강 신청을 하였다. 수강생 대부분이 주부들이라서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화 강사가 민화의 무형문화재 이수자여서 수준 높은 민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김경숙의 민화 실력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그리기만 하면 작품이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
민화는 이미 만들어진 그림 본에 색을 입히는 채색 과정인데 그녀는 창작민화를 하고 싶었다. 그림을 창작하여 민화기법으로 채색을 하였다. 그녀는 그림에 푹 빠져 그림을 그릴 때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완성한 작품을 평가받기 위해 인터넷에서 공모전을 검색하였다. 그렇게 알게 된 장애인예 술계에서는 가장 큰 상인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과 jw아트 어워즈에 응모를 하였다. 그런데 2023년 9월에 대한민국장 애인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같은 해 11월에는 jw아트어워즈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녀가 주민센터 민화교실에 찾아간 것이 2023년 5월이고 보면 그림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수상을 하여 그녀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공부하고 싶어서 집을 떠나는 도전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백일잔치를 하는데 그때 경숙은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마비되고 말았다. 1967년생이라서 그 당시는 소아마비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안타깝게 그녀는 소아마비 바이러스 침입을 막지 못하였다.
3남 2녀의 막내였던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9세 때에 전북 순창에 있는 강경마을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 호롱불로 생활을 하였다.
보리쌀에 고구마와 무를 썰어 넣고 지은 밥으로 허기가 채워지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야 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선비 같은 분이었는데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을 몽땅 잃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분노 때문에 생긴 병으로 쓰러지셔서 그녀가 9세였던 그해 아버지도 잃게 되었다.
너무나 한꺼번에 닥친 시련에 짓눌려 꿈이나 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암울한 시기였다. 학교가 십 리 길이라 학교는 포기해야 했다. 마당만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12세에 집을 떠나 서울 봉천동에 있는 삼육재활학교에 갔다. 엄마는 어린 딸이 집을 떠나 재활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경숙은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았다.
경숙의 굳은 결심으로 삼육재활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다시 암울했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 졸업생들은 시계포 같은 작은 가게를 내고 독립을 하였지만 여자 졸업생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숙은 시골집으로 가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기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언니의 신혼집에 얹혀살았다. 취직을 해서 독립하겠다는 다부진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는 중증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는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무위도식하는 시간이 5년이나 흘렀다.
사회생활에 도전하다
어느 날 장애인취업박람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들고 잠실로 갔다. 박람회장 안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내성적인데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서 화단에 앉아 있는데 정장 차림의 남자 몇 명이 담배를 피우면서 경숙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박람회에 오셨죠? ㅇㅇ부스에 이력서 놓고 가세요.”
취업박람회는 그 자리에서 면접을 실시하는데 경숙은 그 남자의 말대로 이력서만 주고 나왔다. 며칠 후 장인신용카드에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해서 김경숙은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VIP고객들이 이용하는 카드사여서 친절이 필수였고, 신용카드에 대한 내용을 잘 파악해서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업무였다.
그런데 3년 후 국민은행으로 합병되었다. 국민은행은 큰 은행이라서 주위에서 잘 됐다고 좋아했지만 원 직원들과 합병 직원 사이의 차별이 있었다. 월급도 반토막이 났다.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 한두 명씩 그만두면서 경숙도 휩쓸려 사직하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학벌이 있어야 정규직으로 전환도 되고, 승진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2009년, 대학에 도전하였다. 마침 사이버대학이 있어 등하교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전공을 심리상담학과로 정한 것은 사람의 심리를 알면 사람 관계가 좋아질 것같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아동상담사와 군경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장애인고용공단을 방문하여 상담을 하니 은행 근무 경력이 있어 한국투자신탁에 바로 취업이 되었다. 그 후 조흥은행으로 옮긴 후에는 VIP고객상담원으로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10년 정도 우리나라 주요 은행에서 근무를 하였다.
결혼도 도전이다
삼육재활학교 시절 조선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휴학계를 내고 삼육재활원에서 금은세공 기술을 배우던 원생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대학물을 먹은 엘리트였다. 그는 수료 후 재활원을 떠나며 학교로 복학을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짧은 인연이 있었던 그를 10년 후에 우연히 정말 뜻밖에 다시 만났다.
삼육재활원 원생이었던 한 언니가 관악구청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모임을 자주 만들었다. 그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와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인연으로 그들은 연인이 되었고, 10년을 친구처럼 지내다가 부부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것은 임신으로 은행 바닥에 깔린 카펫 냄새가 너무 싫어서였다. 입덧이 심하지 않았다면 계속 근무를 했을 것이다.
엄마가 되는 일은 일처럼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성장시키며 그녀도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키운 아들이 벌써 21세가 되었다. 결혼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느냐며 딸의 결혼에 걱정을 많이 하신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다가 2019년 돌아가셨다. 코로나19로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러야 했다.
엄마는 입담이 좋고 정이 많으셨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즐겨하셔서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요즘은 형제들이 만나면 옛날얘기를 많이 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보낸 시골 초가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호롱불이 있던 산속 초가집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은 오빠 부부가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오빠는 마당 옆에 섬진강힐링 센터 휴드림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엄마를 도와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경제생활을 책임져 왔던 아버지와 같은 오빠이다. 가족들을 돌보느라 고생을 많이 했던 오빠는 퇴직 후 예술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김경숙 오빠는 김철수 판화가로 순창미술협회 회장으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동생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때 가장 많이 기뻐하며 응원해 주었다.
장애예술인의 길잡이
2013년 중증여성장애인 문학 모임 ‘소설반동아리’ 대표로 활동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금(5백만 원)을 받아 회원들에게 책을 사 주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의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어 장애인 동료들의 문학활동에 도움을 주었다.
강사로는 문학평론가 고영직, 철학아카데미 대표 김진영 님을 초대하여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대학에 입학하여 사회복지를 전공한 후 동료 상담사의 길을 찾아가기도 하였고 직장을 구해 사회로 진출하는 등 회원들이 자신의 몫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그림에 관심 있는 중증여성장애인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명은 ‘화화’로 그림으로 말한다는 뜻이다. 인천 계양구청 평생학습실 구청에서 우수동아리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였다. 재능기부 강사가 없어 임시로 김경숙이 그림 지도를 하였다.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은 여성장애인이 많았지만 지원금이 한시적이라서 계속 운영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현재 김경숙은 예술인증명을 하면 창작디딤돌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장애예술인 창작지원 공모사업에 응모하면 책 발간이나 전시회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장애예술인들이 많아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예술인이 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장애예술인이란 정체성
형제들은 김경숙이 소설가로 작품을 발표하고 화가로 전시회를 열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가 없었다면 더 멋진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아깝다고 하지만 그녀는 장애가 자기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장애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예술 속에 자신이 있음을 당당히 말한다.
김경숙은 소설을 쓸 때는 사람의 심리를 세밀히 표현하여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라고, 그림을 그릴 때는 화폭을 가득 채워서 풍요로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배불리 먹을 수만 있어도 만족을 하였는데 지금은 배불리 먹으면서도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적인 허기가 심하다. 자기 작품이 그런 정신적 허기를 채워 주기를 바란다.
김경숙은 지금도 재택근무를 한다. 문서를 정리해 주는 단순 작업이라서 보수는 적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부부가 함께하는 즐거운 외출은 온누리교회로 예배를 가는 것이다. 인천에서 용산까지 가려면 오고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부부는 그 시간이 귀하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지인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기쁜 일은 축하해 주고 슬픈 일은 위로해 주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한 남편은 그녀의 작품을 보고 구도가 조금 안 맞는다든지 색감이 좋다는 둥 하며 조언을 해 준다. 김경숙은 그런 남편이 있어서 든든하다. 이제는 아들도 엄마의 힘이 되어 주고 있어서 앞으로는 작품에 매진할 수 있다.
김경숙은 열심히 사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가장 아깝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만하지 않는다. 늘 부족하여 부끄럽다. 이 겸손이 다시 노력하게 하고 그 노력으로 더 큰 열매를 맺는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김경숙
2013 cyber숭실대학교 심리상담학과 졸업 아동상담사, 군경상담사
미술(한국화, 민화)
수상 2023. 09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 최우수상 2023. 11 jw아트어워즈 우수상 2023. 12 옥천미술관, 순창미술협회 섬진강, 강천사 미술대전 대상
전시 2023. 05 꿈틔움 단체전, 경기도청 신청사 2023. 09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수상작 전시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2관 2실 2023. 11 한‧미 장애예술인 국제미술교류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어바인 파인 아트센터 2023. 11 jw아트어워즈 단체전, 과천사옥 jw홀
문학(소설)
2015 단편소설 <아무도 없는 곳에> 5·18 문학상 대상 2018 「아무도 없는 곳에」 소설집 발간 2018 「아무도 없는 곳에」 소설집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작가로 선정, 문화예술 누리집에 작품 수록 2022 「그녀들의 조선」 앤솔러지 발간 2023 「걸똘마니들」 장편소설 발간 2023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단편소설 <치파오> 문장웹진에 수록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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