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삶의 무게와 고민, 그리고 도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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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EC 0 Comments 296 Views 21-08-23 16:31본문
◎ 후천적 장애, 나에게 찾아온 절망
1991년 1월 6일, 그날은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곧 대학생이 된다는 들뜬 마음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 불행한 사고가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양 하지는 모두 절단되어 있었고 척수는 손상되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두개골 파열도 심해서 죽다 살아난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날의 사고는 20살 대학생이 되면 꼭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모든 꿈을 무너뜨렸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뇌수술, 척추 수술, 다리 절단 수술, 그리고 욕창 수술까지 나의 몸은 고통뿐이었고 그 고통을 참아내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 장애보다 버거웠던 사회의 벽
신체적 고통이 어느 정도 줄어들 때쯤 문득 ‘내가 장애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저는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사회에 참여하기보다는 그대로 집에 머무르며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던 저를 절망 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20살 당시, 신체의 통증만큼이나 저를 괴롭혔던 것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의족을 맞추고 재활 훈련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사고 이전의 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부 생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 차별 앞에서 저는 무력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 장애를 가진, 사회복지사로
저의 20대는 절망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장애인들이 어떻게 취업을 하는지 열심히 탐색했습니다. 그러다 일산 장애인직업전문학교(현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박했던 저는 대학원을 휴학했고 그곳에 입학하여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병변장애를 가진 수많은 장애인 친구들과 소통했습니다. 그 덕에 다양한 장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장애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부모님은 ‘은미야, 네 코가 석자인데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니?’라며 걱정하셨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사회복지사로서 일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나는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장애인 재활상담사 그리고 장애인동료상담사, 장애인 인권 강사, 발달장애인 성교육 강사,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 등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전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이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며 우리 사회의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 무관심, 관심으로 바꾸다.
저는 강의를 하면서 항상 장애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장애에 대한 바른 인식은 장애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합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애에 대한 교육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2018년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되었을 때 저는 들뜨고 기쁜 마음으로 강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의무교육을 받는 직장인들은 장애인의 인권과 현실에 무관심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과 생각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관심에서 관심,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 인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교육생들과 소통하려는 노력과 존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는 우여곡절이 많은 저의 삶을 강의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제가 겪은 사고, 장애인으로 취업하기,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사회복지사, 그리고 강사로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스토리 등을 담아냈슴니다. 특히 제가 먼저 진솔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사람들도 나에게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한 걸음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장애인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이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마음의 안정도 되찾았습니다.
◎ 인정과 존중의 사회를 위해
어느덧 제가 장애를 가진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질풍노도의 치열했던 젊은 날의 저도 대견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숙해진 지금의 제가 더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장애인 생존자로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제가 되었고 제가 하는 강의들은 “장애인의 삶의 무게와 고민, 그리고 도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50살이 된 저는 여전히 치열하게 저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새를 맞이할 때마다 실감하는 것지만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고 세상을 바꾸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온 처절한 인생을 되돌아보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변화는 나와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깨닫습니다. 올 한해에는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더 행복하고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출처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공식블로그(https://blog.naver.com/kead1/222230237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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