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 인터뷰, 새로운 길을 가는 모델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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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EC 0 Comments 165 Views 24-04-05 10:20본문
장애예술인 인터뷰, 새로운 길을 가는 모델 김종욱
뇌병변장애의 모든 특성이 있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장애등급 폐지 후 표현) 김종욱은 11세 때부터 전동 휠체어를 탔다. 그의 꿈은 패션모델이다. 패션모델에 도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으며 대중들과 소통하는 크리에이터이다. 그는 “외국에는 휠체어를 타고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모델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휠체어모델이 설 무대가 없는지” 라며 아쉬워했다.
모델 김종욱. ©김종욱
신기한 학생
대학에 갈 때 사회복지과를 선택했다.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기보단 어릴 때부터 집 근처 복지관에서 휠체어를 탄 복지사 선생님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직업 적성검사를 했을 때도 추천 직업 목록 중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잘 알려진 장애인의 직업들 중에선 사회복지사가 나랑 제일 잘 맞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복지 프로그램도 부족하고 그에 대한 홍보는 더 부족하다.
나는 나라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들을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보장구 수리나 학습용 전자기기 지원 등 유용한 지원책들을 주변에서 듣고 나도 신청해야겠다, 하고 찾아보면 이미 신청 기간이 지나 있을 때가 다반사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어머니 주변 장애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 지원 프로그램이나 정책들을 모르고 지나친다. 나는 모르고 지나친 그 정보들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또 유용하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집 근처 대학 사회복지과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최근 동기들에게 들은 바로, 신입생 때 내 첫인상은 ‘신기함’이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때 접했던 장애인 학생들과 달리 신입생 환영회나 MT 등 모든 행사에 당연히 참여하는 모습이 새로웠다고.
대학 생활은 나와 너무 잘 맞았다. 선배라는 호칭 없이 위계 질서가 없는 문화가 좋았고, 우리 과 연극 학술제에서 휠체어를 타고 연기도 했다.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 덕인 것 같다. 대학 생활은 재밌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복지 공부는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장의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긴 했지만 그러고 나면 끝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흐르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갔다. 모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공공기관 사회복지과의 공무원으로 취직했을 것 같다.
다이어트로 생긴 자신감
나는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움직임이 적어 살이 빠르게 붙는다.
스물한 살 때가 그랬다. 원래도 살집이 있는 상태였지만 성인이 되어 술자리도 늘고 배달 음식도 많이 먹으며 자연스레 몸무게가 불었다.
내가 살을 빼기 시작한 건 친구들에게 미안해서였다. 계단뿐인 술집을 출입할 때나 시설이 잘 안 갖춰진 MT장소를 갈 땐 친구 등에 업혀서 갈 일이 많았는데, 나를 도와주던 친구들이 전보다 힘들어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건 2학년 여름방학, 요령을 모르던 내가 택한 다이어트 방법은 극단적 단식이었다. 밥을 안 먹을 때도 많고, 하루 세 번 먹던 밥은 하루 한 번, 반의 반 공기로 먹었다.
주식이 아메리카노인데 살이 안빠질 리 없다. 정확히 몇 킬로그램이 빠졌는지는 모른다. 체중계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안으로만 봐도 볼이 엄청 홀쭉해졌다. 배달음식에 쓰던 돈을 절약하니 30만 원이라는 목돈이 생겼다. 누군가에겐 작은 돈일 수 있지만 학생인 내겐 엄청난 돈이었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 주위에 옷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인터넷 쇼핑하는 걸 구경했다. 나도 직접 옷가게로 쇼핑을 다니긴 어려우니 호기심으로 무신사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이 옷 저 옷을 사 봤다. 이전까진 편한 옷, 펑퍼짐한 옷을 고집하던 내가 다이어트도 해서 딱 맞는 옷을 입으니 훨씬 옷태가 살았다. 식비는 고스란히 쇼핑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생이 함께 가자며 패션쇼 티켓을 구해 왔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서울 패션위크였다. 옷을 잘 입건 못 입건 나는 살면서 눈에 안 띈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왕 튈 거 멋있게 튀고 싶다.
패션위크인 만큼 그날 나는 내가 꾸밀 수 있는 최대한으로 꾸미고 현장으로 향했다. 장르는 스트릿 패션이었다. 검은 바지, 목에 신발끈 같은 장식이 달린 검은 슬리브 티셔츠와 검은 벙거지 모자.
지금은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 나에겐 패션 아이템이었던 마스크도 했었다. DDP 도착 후 쇼가 열리는 시간까지 플라자 밖에서 기다릴 때였다. 다른 모델들은 서서 포즈를 취하는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유일함이 주는 유니크함 때문이었을까, 그날 나를 촬영한 포토그래퍼가 열댓 명 이상은 될 것이다. 연이은 카메라 셔터음이 부담보단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일 년 뒤, 두 번째 서울 패션위크로 향했다. 이번엔 나 말고도 휠체어를 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사교성이 무척 좋은 미국인 패션 크리에이터였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그가 내게 제안을 하나 했다. 런웨이 모델에 도전해 보지 않겠냐고. 수동 휠체어로는 모델들의 속도를 맞추기 힘들 수 있는데 나는 전동 휠체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비장애인모델들보다 빠를 것이라며 잘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그의 한 마디가 내 꿈의 씨앗이 되어 모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모델이나 해 볼까
모델과 포토그래퍼가 상호 무보수로 포트폴리오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첫 스냅 작업은 사진학과를 지망하는 한 고등학생 포토그래퍼와 함께였다. 인사동 거리에서 촬영한 스트릿 패션 후드티의 협찬 스냅이었다. 다행히도 날씨가 화창했다. 작업했던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화기애애하던 첫 작업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포토 그래퍼 친구가 보내 준 사진들을 내 SNS에 올리자 첫 작업인데도 반응이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협찬해 준 패션 브랜드 대표님이 사진을 너무 만족스러워하셨다. 그 뒤로 문래동 공장터에서 찍은 스냅,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작업한 의정부 거리 스냅, 인천의 엔티크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진행한 스냅 등 바쁘게 촬영을 다녔다. 휠체어 때문에 스튜디오 접근성이 떨어져 주로 야외 촬영이 많았다. 작업 사진이 한 장 두 장 쌓이며 내 SNS는 ‘장애인모델’로서의 포트폴리오가 됐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작업 제안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홍대 버스킹 존에서 모델 지망생들과 간이 패션쇼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의상, 음악, 무대 동선까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꾸린 무대였다. 그때 당시 모델들이 전부 시간을 맞춰 모여서 연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연습 공간도 상당히 열악했다. 한두 번 모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각자 연습해 올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그 연습 장소가 되었던 곳이 지하철 승강장이다. 환승 경로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곳은 기다란 런웨이 무대의 형태와 흡사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패션쇼에 쓰일 음악을 들으며 그 공간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이동했다.
MBC <우리 동네 피터팬>에서 섭외 문의도 들어와 모델 오디션에 도전하는 내 모습을 6주간 촬영했다. 비록 오디션에 합격하진 못했지만 에이전시 측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모델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배우도 해 볼까
배우 제의도 왔다. 장애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 〈모두의 영화〉 중 한 에피소드 ‘씨네필(Cinephile)’ 의 주연 배우였다. 처음 받아 본 촬영 스케줄과 대본,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모니터, 컷 편집을 잡아 주는 슬레이트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농아인과 지체장애인인 영화광 두 명이 영화관 장애인석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이야기였다. 현실에선 겪어 본 적 없으나 충분히 있을 법한 시나리오였고, 배우라는 타이틀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첫 연기 도전이라 어색한 감이 많았지만 즐겁게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스태프분들에게 감사하다.
최근 작업한 서울관광재단 유튜브 광고의 경우 휠체어 접근성이 좋은 배리어프리 서울 여행이 콘셉트였다. 계단 옆에 휠체어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가 항상 함께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도 어느 건물에나 마련되어 있다.
지난해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 올려진 한국장애예술인협회가 주관한 공연 <그 집 모자의 기도>에서 주인공 아들 역할을 하여 큰 인기를 모았다. 그해 노보텔앰배서더호텔 장애예술인 큰잔치에서 다시 공연하였고, 올 4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또다시 공연하여 KBS 1TV를 통해 전국으로 생방송되기도 하였다.
“어메, 오지 마소, 절대로 빨리 오지 마소, 나는 이대로 (폭우에) 떠밀려 갈라오. 그래야 어메가 좀 쉬지 않겠소. 어메, 나는 이 폭우가 고맙소. 그러니 절대 날 구하지 마소.”
이 애절한 대사를 너무도 잘 소화해 냈던 것이다.
갈 때까지 가 보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매력은 무엇일까?
장애에 대해서 상실감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점, 장애를 잊고 생활하는 평소 삶의 태도가 당당함으로, 밝은 에너지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희소성도 한몫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나는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아예 시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할 수 있다는 일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내 상태가 내 꿈에게, 내 행복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건 너무도 싫었다. 꿈을 포기하기는 싫으면서 모순적으로 꿈이 두려웠다. 내겐 너무도 높았으니까.
모델이라는 직업은 큰 키에 작은 얼굴, 좋은 비율의 신체를 가진 사람들의 직종이었기에 내가 이 업계에 욕심을 낸다는 것 자체가 종사자들에게 민폐였다.
주변에서 대놓고 내 꿈에 대해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저러다 말겠지’ 하는 반응들은 더러 있었다. 가족들은 모델이라는 직업이 월급처럼 정해진 수입이 매달 들어오는 구조가 아닌 불안정한 수입구조라는 점을 걱정했다. 사회복지과 전공을 살려, 공무원 준비 등 안정적인 직업을 준비하길 원하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가족들의 응원과 주변의 우려 섞인 반응이 섞여 용기와 오기로 똘똘 뭉쳤다. 실패할 확률이 더 큰 싸움이겠지만 가는 데까진 가 보겠다 마음먹었다.
아빠는 돌아가시고, 지금은 엄마와 직장에 다니는 형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도전하리라 결심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델이고 싶다
요즘의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모델도, 배우도, 방송인도 모두 매력적이지만 현재는 모델이라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카메라 앞에 설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옷과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매력이 나에겐 더 크게 다가온다. 아직은 나를 알려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작업을 하는 편이다.
단, 단지 장애인이 필요해서 섭외하는 작업들은 거절하고 있다.
장애인이 필요한 작업이 아닌 김종욱이 필요한 작업들을 하고 싶다.
최근엔 ‘장애인모델 김종욱이 아닌 모델 김종욱’을 주제로 한 포토그래퍼와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늘 ‘휠체어 장애인모델’이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작업 사진들엔 꼭 휠체어가 있다. 실제로 일상의 많은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보내는 것은 맞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내 정체성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휠체어 장애인모델이 휠체어를 벗어난다면’ 이라는 가제로 사진들을 찍고 있다. 우선 나의 신체나 장애 증상에 대해 포토그래퍼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휠체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포즈를 연구해 나가는 작업이다. 작가와의 대화를 영상으로 담고, 대화 도중 시도한 포즈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단순히 사진이 아닌 하나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김종욱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광고 <문화매력국가>, 우리금융그룹 광고(2021), 서울관광공사 홍보영상(2021)
Ablind <검은색 사랑> 포스터 모델
삼성물산 ‘하티스트’ 2기 모델(2020)
의류브랜드 피팅모델, 창립멤버
개인작업 <손상과 평면 1 ,2> , <유대>
연극 <그 집 모자의 기도> 출연(2022, 2023)
단편영화 <모두의 영화> 中 ‘씨네필’(2019)
MBC <우리 동네 피터팬>, EBS <별일 없이 산다>, KBS <사랑의 가족>
MBC <뉴스데스크> 인터뷰(2023), Break magazine vol.25 인터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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